* 감상+해석글 : 스포일러 유의
* 러프한 글, 따로 문장 교열/정리 X
우리는 때때로 첫눈에 마음이 가는 닟선 사람들을 만난다
- 도스토예프스키
0. 감상
우리는 얼마나 고독에 귀 기울이며 살아갈까. 배경에 대해 아는 거라곤 도스토 인용이 나온다는 것과 느린 템포의 2인극. 빈약한 지식을 끌어안고 간 극 치고는 많은 걸 담아왔다.
편하게 감상들부터 적으면 난해했다. 솔직히 이해가 쉬운 극은 아니다. 메타포를 이곳저곳 숨겨놓았지만 가시적인 상징성으로 드러내는 편은 아니다. 나와서 나도 즉각 감상을 나누기가 어려웠다. 아무래도 수미상관이나 무대의 연출을 이용하는 비유보다는 이야기 안의 이야기, 즉 줄글들을 이용한 비유가 다수였기 때문이라 추측한다. 오히려 생각할 게 많아서 난 좋았지만 확실히 호불호가 갈릴 극 같다.
또 좋았던 점은 최근에 계속 머리를 괴롭히던 고민들과 엮인 극이였다는 거. 사랑의 자격이란 무엇인지. 정녕 고통은 감내 가치가 있는지. 삶이란 무엇인지. 특히 사랑을 외로움과 같은 감정이 아닌 가치적인 면에서 해석하려니 머리가 복잡해지던 참이었는데... 정리하기 딱 좋은 극이었다.
별개로 솔직히 소리벨라는 좀 아쉬웠다. <살수선>에서 김신록 배우님의 1인극을 봐서 그런가? 필자로서 극을 끌고가는 힘이 약했다. 극작 자체도 퀄이 높다는 느낌은 못받았다. 생각을 많이 남게 만드는 거랑, 글 본연의 역할인 독자를 끌어당기는 능력은 별개니까. 아마 크리스토퍼의 캐릭터성이 아니었다면 지루했을 스토리라인. 크리스토퍼는 누구로 보든 상관 없었는데 이석준은 정말 의외의 발견. 항상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기대했던 배우보다 상대 역이 더 눈에 띄는 거 같다.
여하튼 개인적인 감상은 슬슬 랩업하고 잊기 전에 해석을 몇 자 남기려한다.
1부 사랑 : 벨라
우리는 때때로 첫눈에 마음이 가는 낯선 사람들을 만난다. 도스토의 입을 빌려 벨라한테 건네는 크리스토퍼의 고백. 극을 본 사람들은 이 문장을 어떻게 읽었을까. 나이와 조건 때문에 꺾인 남녀간의 애정? 자신의 글을 쓸 수 있게 만든 뮤즈에게 남긴 감사? 자신조차 몰라 타인의 언어로 빌려온 마음? 제각각으로 해독될 여지가 남아있는 건 본래 사랑의 속성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벨라와 크리스토퍼의 첫 관계는 문학이나 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구도로 등장한다. 남자의 치기어린 젊음에 끌리는 나이 차가 나는 어른의 여성. 그래서 처음에는 이 극이 도대체 은교랑 다를 게 무엇인가...하고 현타가 와서 노려보면서 봤던 것 같다. 그리고 반전 없이 두 남녀는 사제의 선을 넘어 관계를 확장한다. 그녀는 버릇없는 말버릇의 생동감에 취하고, 때묻지 않은 열정에 감응한다. 개인적으로는 둘의 관계에서 아예 남녀간의 텐션이 없었다는 해석은 개인의 불편함에 의한 무시라고 본다. 분명 둘은 남녀간의 끌림을 느꼈다.
벨라의 소설을 이야기하던 둘이 급작스레 분위기가 잡히는 데에서 드러난다. 여지껏 촘촘히 전개되던 줄거리와 달리 다소 급박하고 뜬금없게 잡히는 섹슈얼 텐션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게 과연 극에서 불필요한 장치였을까?
나도 만날 수 있을 줄 알았지, 책을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을. 책은 합법적인 외도 상대니까.
둘이 실수를 저지르기 직전 벨라는 자신이 혼자인 이유에 대해 말한다. 그녀의 사랑의 조건에 부합한 사람은 없었고 무엇보다 그녀는 '어쩌면 사람이 싫을 수도 있다' 고 말한다. 이에 크리스토퍼는 플라토닉에 가까웠던 십대 시절의 연애를 말하며 '저는 누군가 저를 만지는 게 싫을 수도 있어요.'라고 한다. 그래놓고 서로의 뺨을 쥔 채 입맞추러 다가간다니. 정말 웃기는 남녀 한 쌍이 아닌가?
그러나 이 모순적인 지점에서 작가는 사랑에 대한 첫 주장을 펼친다. 사랑은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게 위선적일 수밖에 없음을. 스스로를 고독을 선호한다는 여자는 뺨을 쥔 손의 온기에 대해 방백한다. 접촉이 싫다던 남자는 제멋대로 거리를 좁혀온다. 이를 영화에서는 사랑을 위해 철칙을 어기는 낭만으로 비추지만, 본 극은 이를 인간의 추함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둘이 혐오한다던 것들 또한 언제든 욕망으로 변모할 수 있음을 통해서. 인간의 위선적임이야 말로 실은 사랑의 본질임을 명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위선을 낭만이라 포장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언어 간의 오해가 아닌 '교수'와 '학생'과 같이 누구나 거부감을 느낄만한 속성을 둘한테 부여한다. 이에 독자는 극에서 등장하는 사랑을 '욕망'으로 읽어낼 수 있게 된다.
이 욕망에 확정을 지어주는 건 벨라의 원나잇이다. 구체적인 묘사를 듣는 건 나 또한 즐겁지 않았으나(...), 본 행위를 통해 크리스토퍼를 떠올림을 통해 작가는 배설에 가까운 섹스와 일전 벨라의 감정을 중첩됨을 보여준다. 즉, 자칫 '나이란 장벽을 뚫고 서로를 향해 공명하는 사랑'으로 흘러감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고의적 불쾌함을 선사한다. 섹스를 향한 벨라의 욕망이나, 크리스토퍼를 향한 감정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걸. 사랑 또한 결국 욕망의 한 형태라는 걸.
이러한 맥락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사랑'이 탄생한다. 사랑이 결국 욕망과 다를 바가 없다면, 벨라한테 필요한 건 말이 잘 통하는 젊은 남성이었을 뿐일까? 답은 크리스토퍼한테 있다. 벨라가 크리스토퍼에 대한 감정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경우는 거진 없었다. 대게 행동으로 추측케 만들지. 그 몇 안되는 순간에 벨라의 욕망이 드러난다.
화장실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보이는 혈기왕성함에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쾌감을 느꼈다.
결국 그녀의 사랑, 즉 갈망의 대상은 젊음이었다. 그러나 이는 일반적인 나이 차 관계에서 연출되는 젊음과는 다르다. 자신과 대조되는 어리고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시기나 질투 혹은 염원. 돌아올 수 없는 시절들에 대한 그리움이 보통 나이 든 사람이 젊은이한테 매료되는 지점이다. 그 위에는 보통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무상함과 같은 한탄이 조미료처럼 얹힌다. 그러나 벨라는 말한다. 세월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불현듯 덮쳐오는 것. 이처럼 벨라의 시간과 세월은 그녀를 완전한 무력감으로 끌어내린다. 마치 죽음의 형태처럼.
따라서 벨라의 젊음은 이와 대비되는 삶에 근거한다. 그렇기에 크리스토퍼의 아름다운 눈이 아닌,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뜨거운 손에 가슴이 뛴다. 그의 청춘에서 대학 생활과 연애의 찬란함이 아닌 자신은 잃어버린 글에 대한 무모한 열정에 반응한다. 실제 이성을 잃고 흔들릴 연상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주로 젊은 쪽의 외모를 매력적으로 그려내거나 캐스팅하는 것과 다르게 극에서 크리스토퍼의 외모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벨라는 오로지 건방짐, 열정, 불안함과 같이 살아 숨쉬는 그의 부분들에 집중한다.
이는 외모와 같이 회복 불가능한 것들이 아니다. 그녀도 살아있다, 아직은. 그녀도 글을 쓸 수 있다, 아직은. 그러나 매일을 살아내고 매일을 적어가려는 크리스토퍼와 달리 그녀는 17년동안 글을 놓고, 암 앞에서 삶을 포기하기로 마음 먹는다. 자신과 반대되는 크리스토퍼의 속성은 결국 젊음이란 시기가 아닌 젊음이란 속성이다. 뜨겁게 살아있음을 고하는.
결국 작가가 벨라의 사랑을 통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건
고독에 스스로를 가두는 사람 또한, 죽음을 받아들인 사람 또한
위선적이게도 삶과 생을 사랑한다
누구보다도 삶에 미련이 없을 거 같은 벨라가 진정 사랑한 건 삶이다. 시지프 신화에서 이러한 문장이 나온다. 우리에게 살아갈 이유가 때로는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곤 한다고. 이처럼 죽음에 속한 인간 또한 어떠한 의미도 목적도 없는 삶에 집착하곤 한다. 그게 바로 위선적인 인간이고, 사랑할수밖에 없는 인간이다. 작가는 벨라를 통해 남녀의 사랑에 장벽이 없음을 시사하고 싶었던 게 아니다.
삶에 대해 어떤 부조리한 조건도 우리가 살아갈 이유를 막지 못함을
삶에 대한 어떤 원망과 고통도 우리가 사랑을 버릴 이유가 되지 못함을
이러한 인간의 생을 향한 추한 집착과 욕망이 곧 사랑임을 말한다.
이러한 무맥락성의 본질을 작가는 크리스토퍼가 벨라한테 둘의 관계에 대해 시사한 문장으로 설명한다.
우리는 때때로 첫눈에 마음이 가는 낯선 사람들을 만난다.
ㄴ 연결지어 읽을 법한 사랑에 대한 해석
2부 죽음 : 크리스토퍼
대도시의 사랑법에 재희가 있다면, 이 극에는 크리스토퍼가 있었다. 아마 극이 어려워진 대부분의 이유도 이 미스터리한 인물 때문일 것이다. 벨라에 대한 크리스토퍼의 감정은 무엇이었는지. 크리스토퍼의 소설은 어디까지가 실화인지. 크리스토퍼의 죽음은 그래서 자살인지 사고인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모두 뚜렷한 해석이 나오기가 어렵다. 내 생각에도 작가도 어느 하나를 상정하고 쓴 거 같지는 않다. 그래서 이 부분은 주관적으로 나의 주석만을 덧붙이는 식으로 하나하나 풀어가보려고 한다.
1) 크리스토퍼는 벨라를 사랑했을까
이는 크리스토퍼가 비주류 괴짜라는 점을 우선 이해하고 가야한다. 사랑이란 것 또한 결국 크리스토퍼한테는 하나의 규정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단어에 구속되는 걸 좋아할 사람은 아니다. 가볍게 논한 대학의 여자나 과거의 관계는 그럼 뭐냐 묻는다면 이들을 대하는 크리스토퍼는 창조된 하나의 페르소나였다고 생각한다. 대학에 대해 논하는 것만 봐도 그가 대부분의 집단과 자신을 구분지어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벨라한테만큼은 이를 지운다.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고, 거침없는 욕설과 폭언으로 스스로를 드러낸다. 솔직한 소설이라는 벨라의 평이 괜히 등장한 게 아니라고 본다.
초반에서 나온 라스콜니코프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도스토가 그를 창조한 건 마치 뮤즈를 상정한 것과도 같았다고. 보통 예술에서 뮤즈를 묘사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할까? 현실에서 가장 자신의 이데아에 가깝기 때문에 그대로 재현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즉, 거짓이 개입될 여지가 최소화된다. (*재밌는 건 정물화에 대한 묘사가 등장했는데, 크리스토퍼가 지루하고 재미없고 그대로인 정물화를 좋아한다고 벨라한테 고백한다.) 벨라한테 허물을 보여주지 않는 크리스토퍼를 다시 생각해보자. 아마도 그가 카테고리를 정해야 한다면 이쪽에 가깝지 않을까?
그러나 이는 크리스토퍼 입장에서의 해석이고,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독해하자면 사랑이 맞다. 다만 성적인 끌림은 부차적인 것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크리스토퍼는 자신을 채워줄 뮤즈를 계속해서 욕망했기에, 이에 대한 연장선상으로 섹텐의 상황과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크리스토퍼가 손을 내린 것도, '교수와 제자가 이래서는 아니된다'라는 일반적인 도덕선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럴 놈이었으면 애초에 교수 면담 예약을 그 ㅈㄹ로 하지 않았을 것.) 아마도 그는 자신의 뮤즈를 애욕이라는 감정으로 훼손하는 것에 대해 불쾌함을 느꼈으리라고 본다. 그래서 이후에 잠시 거리를 둔 것이라 연결지으면 꽤나 매끄러우니까.
뮤즈에 대한 사랑이 과연 연인에 대한 사랑과 같을지는... 사람에 따라 달라 섣불리 판단하진 못하겠다. 일단 적어도 벨라를 사랑했는가, 라고 물으면 나는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2) 크리스토퍼의 죽음
이 부분도 해설이 갈리겠지만 나는 본인의 의도된 죽음이라 생각한다. 크리스토퍼의 성향 상 나는 그가 매일 죽음에 대한 충동성을 품고 살았을 인물이라 생각한다. 이 성질이 바로 죽음을 결심한 벨라 앞에서 자신에 대해 설명할 때 나온다.
저는 호텔방에 아기와 갇혀있다면... 아기를 창문 밖으로 던지지 않을 자신이 없어요
아이는 소설에서 새 생명, 희망, 미래와 같은 상징성을 지닌다. 그러한 아이를 던진다는 건, 그것도 본인의 손으로...
여기까지만 말해도 메타포가 이어진다.
- 창문이 없으면?
- 그럼 안...하겠죠
창문의 존재는 바로 숨구멍이다. 언제든 자신이 선택하고 탈출할 수 있을 거란 선택권. 그러나 이 선택권을 박탈당하는 순간, 그는 구태여 아이를 죽일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자살을 염원하는 사람들이 언제든 죽음이란 선택을 하지 않는다. 창문이 없는 방과 같이 외부적인 이유로 차단되거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 아마 크리스토퍼에게는 사회가 그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창을 열어준 것이 바로 벨라이다.
할게요, 대신 제 소설을 읽으면.
벨라의 죽음에 동조하겠다 크리스토퍼가 동의한 이유가 여기서 탄생한다. 우리는 때때로 첫눈에 마음이 가는 낯선 사람들을 만난다. 지속적으로 인용하는 이 문장이 설명해주는 또 하나의 근거다. 죽음을 택하려는 욕망, 자살의 선택. 크리스토퍼한테는 벨라의 생각이 미치거나 야속하다기보단 자신과 같은 '충동'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벨라의 약속을 들어주면서 동시에 벨라한테도 자신의 목숨을 맡긴다.
남성이 돌아올 것 같나요?
벨라가 주사기를 건넸다면, 크리스토퍼는 물음을 건넸다. 오로지 그만이 살인의 주동자가 된 것이 아니다. 자신한테 벨라가 삶의 책임을 일부 넘긴 순간, 그 또한 동일한테 벨라한테 권한을 준 것이다. 결국 벨라는 말줄임표 끝에 그가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한다. 내 해석 상에는 원고는 말줄임표일 지언정, 크리스토퍼의 인생에서는 이 순간 온점이 찍힌 것이다. 자신이 맞이한 죽음(Bella)에 의해, 창문은 열렸다.
3) 벨라는 왜 살린 것일까
가장 이해가 안 되고 깊게 생각해야했던 부분이다. 극이 끝나고 나 또한 계속 질문했다. 왜 자신이 죽고 벨라는 살았을까. 여기서 다시 1부의 사랑이 등장한다. 사랑은 언제나 위선적이다. 크리스토퍼가 벨라를 사랑한 이상, 자신의 온점을 찍은 것처럼 벨라의 끝 또한 깔끔하게 마무리 할 수 있었을까? 자신의 소설마저 말줄임표로 끝나는 남자가? 아마 그는 차마 자신이 벨라를 완성할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벨라를 하나의 말줄임표로 남기는 것이다. 만약 정녕 깔끔하게 '살린다'가 목적이고 욕망이었다면 약물을 아예 치워버렸을 것이다. 아니면 본인이 이를 사용해서 죽어버렸을지도. 그렇지만 약물을 자신이 주입하지 않았을 뿐 남겨놓고 간다.
*
외에도 소설 안의 소설, 마무리의 연출이 상징하는 바 등 더 풀라면 풀 게 많지만... 일단 2시간 썼는데 아직도 끝이 안나서 여기서 임시 마무리를 지으려 한다. 체력이 나면 보충해서 더 쓸 수도...
<비고>
총점 : 3.8
한줄평 : 생각할거리는 많지만 재관람하거나 시나리오적으로 아름다운 극은 아니었다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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