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from dead(still dead inside)

@joynjoyen

훌훌 털고 일어나요, 그 자식 강냉이를

P.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들을

0.

나는 나를 괴롭게 만드는 것들이 좋다. 눈물이 나오는 영화. 거스러미처럼 기이함이 기어오르는 그림. 젖어드는 먹먹함을 담은 이야기. 이를 모두 묶어 부르면 여운이 된다. 쾌와 불쾌에 무관하게 이런 감정들은 심장 한 편을 무겁게 짓누르곤 한다. 빨라지는 박동의 생경한 느낌은 기묘할 정도로 즐거우면서도 때로는 힘겹다. 이번 책 또한 그랬다. 메마른 폭염 속에서도 나는 집으로 향하는 내 물속에 잠긴 기분이었다.  
 

1.

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불쾌를  끌어들이는 것을 좋아한다. 인간은 즐거운 기억은 금방 잊는 반면 기분 나쁜 일은 배게 속에 숨겨두는 습성이라도 있는지 자다가도 아니 근데-하고 일어나곤 하니까. 그러나 나소내금(편의상 축약하여 일컫겠다)은 내 기준 상당히 매끄럽다. 냉소와 무력이 난무한 화자의 언어 때문에 다소 폭력적인 문체라고 일컫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모든 인물들도 그리고 작가한테서도 양지바른 볕과 같다고 생각했다. 다들 본인이 교양인인 줄 알면서 내키는대로 주먹질을 날리는 코리언다움이 가득하지만, 뭐 결국 결말부를 보면 모두한테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면이 혐오를 다루면서도 인간찬가적인 면이 짙다고 생각했다. 무라타 사야카의 <소멸세계>처럼 불쾌를 장치화 하는 소설들은 작중 혐오에 넘어서 인류애 말살을 끌어내니까 ㅋ... 문제는 이러한 인간찬가가 나를 참 버겁게 만들었다. 명백히 보이는 문제마저 마냥 미워할 수 없어서. 
 

2.

그로테스크의 미학이란 게 있다. 불쾌가 왜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설명해주는 이 도구는 한편으로 파괴성 또한 지니는 날카로운 존재이다. 나에겐 이 소설 또한 그랬다. 불쾌하기보단, 아팠다. 불쾌를 느껴야 할 지점에서마저 통각에 의해 무뎌질 정도로. 세 인물이 나에겐 모두 그랬다. 아픈 손가락처럼 마냥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 점이 참 싫었다. 누군가한테는 고통이었을 시간과 증거를 이해하려드는 것 같아서 내가.
많은 인물 중 가장 날 괴롭힌 건 황남기였다. 서사적으로만 두고 보면 남기라는 인물한테 나는 계속 마음이 갔다. 전할 수 없는 마음, 지켜만 봐야하는 외사랑, 곁에 있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상대. 모르겠다 나는 절절한 쌍방향의 사랑보다 비뚤어지고 아프고 추접한 사랑이 좋다. 가령 민주를 한 숨에 제압할 수 있음에도 피떡이 되게 맞으면서 그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모습과도 같은. 비참하고 나약한 사랑은 나를 움직인다. 민주처럼.
 

남기의 예상 못 할 반응에 대응하는 스스로의 이런 태도 또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생각할 것도 없이 격양된 분노가 터져 나와야 정상이 아니던가.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남자들의 눈믈은, 남자들의 절망은, 아니, 남자들의 젖은 날개조차 내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모든 젖어 있는 것들은, 그것이 여자의 얼굴이건 남자의 얼굴이건 관계없이 나를 슬프게 한다는 것을 나는, 이제, 서서히 깨닫는다. 모든 젖어 있는 것에 나는 태연할 수 없다. 젖은 얼굴의 비애 앞에서 나는 꼼짝도 하지 못한다.

 
나는 이것이 민주가 얻고자 하는 것의 근간을 나타낸다 생각한다. 민주는 폭력을 통해 끊임없이 우위를 확인코자 한다. 수직을 선호하고 남자들이 자신한테 휘둘리는 것을 즐긴다. 그러나 이는 민주의 피상적 착각에서 발생하는 결핍이다. 그녀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타인을 감정으로 굴복시키는 것도, 사랑이란 거추장스러움과 끔찍함으로부터의 단절도, 남자란 존재의 추락도 아니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인간의 따듯함이다. 맞잡았던 승하의 손과 남기의 젖은 얼굴과 같은. 순수한 인간을 그녀는 누구보다도 사랑했다. 사랑과 증오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처럼, 민주는 누구보다도 사람을 열애한다. 그렇기에 자신을 초월자 일컫으면서 도망치려 애를 쓴 것이다. 

 

삶이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절망의 텍스트이다.
(중략)
나는 나를 건설한다. 이것이 운명론자들의 비굴한 굴복과 내 태도가 다른 점이다.
나는 운명을 거부한다. 절망의 텍스트는 그러므로 나의 것이 아니라 당신들의 것이다.

 
민주는 분명 누구보다 운명에 처절하게 저항한다. 그러나 그녀가 거부하고자 하는 것은 남성에게 주어진 힘과 권위라는 폭력이 아니다. 그녀가 진정 맞서는 것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의 연약한 본성이다. 그녀가 내세운 남성은 구체적 성별보다는 자신의 나약함을 숨길 수 있는 세상의 폭력성을 상정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승하를 사랑하게 된다. 이것이 인간의 참 슬프고도 아름다운 본성이다. 아픔 속에서마저 아름다움을 찾아내고야 마는 게 사람이다. 절망에서 외줄을 타는 광대처럼.

*수정 추가
본 해석은 책에 기재된 여성의 피해와 남성의 권위에 대한 차별을 묵살하는 텍스트가 아니다. 후술하겠지만 결말부의 비극을 통해 작가는 확고하게 여성의 현실과 페미니즘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바가 옳다. 다만 여기서 짚고자 하는 부분은 민주의 남성에 대한 분노가 절대적인 성별적 차이 자체가 원인이었다기보단, 그 분노의 원천에는 사람에 대한 기대가 있었음을 짚고 넘어가는 바이다. 그 기대를 짓밟고 유린하는 남성들의 폭력성에 대한 작가의 고발은 분명 책 안에 녹아있나 작가의 서문에도 적혀 있듯이 이는 성별의 문제가 아닌 모든 폭력에 대한 항거임을 생각해 해석을 적는 바이다.
 

3.

다시 남기로 돌아와서. 민주처럼 나 또한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기에 참 힘들었다. 남기의 아픈 사랑은 결말에서 개큰 스노우볼로 내게 돌아왔다. 아주 날 압사해서 걍 짓뭉개라...
남기의 고백을 읽으면서 초입의 나는 단순히 아린 호흡을 넘길 뿐이었다. 그러나 말이 길어질수록 다른 의미로 숨이 막혔다. 얘가 무슨 착각을 하는 거지. 익숙한 불쾌함이 몸을 훑고 가는 기분이었다. 왜일까. 곱씹어도 정확히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은 진술의 마지막에서 드러났다.
 

그래도 선생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였는가에 대해서 이만큼밖에 말하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 조금 아쉬울 뿐, 제 마음은 아주 편안합니다.

 
남기야 이게 무슨 소리니? 이 고해성사의 끝에 가서야 내 짜증을 직면했다. 남기의 고백에는 민주가 없다. 오로지 남기 자신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쉽게 말하면, 남기 사랑의 중심은 민주가 아닌 자신이 민주한테 품은 마음 자체에 있다. 자신이 희대의 사랑을 하는 줄 아는 미친놈들처럼. 연인 간 사랑에 있어 기묘하게도 참 포장이 잘 된 대사가 하나 있다.
 

널 너무 사랑해서 그랬어.

 
사랑이 면죄부인가? 성별 무관 이런 단어를 쓰는 사람은 혈압이 오른다. 남기의 고백이 딱 그렇다. 남기의 마음 중 나는 참 아팠던 게 민주한테 해외로 도망칠 것을 촉구한느 것이었다. 민주한테 이 일의 의미가 어떠한지 누구보다 그는 잘 알 것이기에 자신의 대사가 불러올 후폭풍도, 자신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민주도 다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하기 때문에 결과를 알면서도 뱉는 말들이 있다. 남기처럼. 사랑은 사람을 나약하게 만들고, 나는 민주처럼 그 불완전함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기의 마지막 고백은 결국 제 손으로 자신의 사랑도, 민주도 망치는 일이다. 민주가 세상에 붙잡히는 순간 강민주란 존재의 훼손이 필연적인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남기가 제안한 도주 또한 민주를 자신이 보호할 여성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파괴적 속성을 지닌다그는 자신으로 인해 민주가 훼손되는 일은 탐하면서도민주가 타인에 의해 훼손되는 것에 있어서는 승하 때부터 극도로 예민하게 굴었다. 응당 일어날 법한 감정이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었다. 솔직히 내가 남기였어도 승하 찌르는 생각 밤마다 하면서 잠들었다. 
그러나 선생님을 위해 죽였다. 이건 결국 남기의 자기방어에 불과하다. 남기의 행동은 자신이 가질 수 없다면 파괴해 버리겠다는 감정의 폭주였다. 차라리 그 추악함을 직면했더라면. 변화하는 선생님이 두려웠다고만 고백했다면 나는 아마 남기를 위해서 민주를 예토 전생시켜도 이 글을 인정했을 것이다... 정말로.
그러나 남기는 민주의 죽음을 그녀를 위한 일처럼 묘사한다. 그로테스크의 미학은 이기심과 추악함을 감추지 않는 발칙함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남기는 추악함을 숨기고 그들의 끝을 아름다움으로만 포장하려 한다. 사랑해서 그랬어. 어디서 많이 들어본 대사가 아닌가.
 

 
 

4.

글에서 우연은 만들어질 수 있을 지언정 무의미함은 없다. 과연 작가는 정말 어떠한 의도도 없이 민주를 상담원으로 상정했을까. 초장에서 나온 가정 폭력에 대하는 여성들의 태도도 단순한 현실 제시였을까. 사회적 약자성을 객관화했기에 강자를 추구했던 민주의 마음도 대리 만족격에 불과했을까. 그녀의 과격한 폭력성과 남성에 대한 편견 또한 마냥 선역으로 연출하지 않기 위한 장치가 끝이었을까. 민주는 그렇게 일차원적인 존재인가.
 
그녀의 말로는 참으로 예술적이다. 그녀가 일평생 거스르고자 한 남성으로 그려진 폭력성한테 살해당하고, 그녀가 그토록 무시했던 어리석은 여성들과 다를 바 없는 최후에 갇혔다. 내막을 아는 우리는 이 죽음에 복잡한 세 명의 마음이 얽힌 한 인간의 죽음이겠지만, 타자들의 시선에 그녀는 결국 <남성 공범한테 살인당한 여성>이란 꼬리표가 붙었다. 참으로 잔인하다.
결국 그녀의 죽음은 작가가 사회한테 던지는 고발이다. 죽음마저도 그녀가 원하는 식으로 맞이하지 못하는 현실을 통해 권력을 쥐어도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그리고 이 고발에 역겨움이 아닌 힘겨움을 느낄 독자들의 심정에 비수를 꽂는다. 사람이라면 동할 수밖에 없는 남기의 존재를 이용해. 과연 우리는 비극을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우리가 그렇게 이성적이고 현명한 동물인지를 묻는다.
 
내가 부끄러움을 느낀 부분은 여기였다. 어쩌면 진짜 잔인한 건 여성이란 꼬리표를 붙인 작중의 사람들이 아닌 이 글을 읽는 나일수도 있다. 폭력에 발산한 불과한 남기의 행위를 결국 인과를 투영해 사랑이라 오독하고 있으니까. 이러한 부끄러움이 강하게 온 이유는 아마 초입부를 읽고 든 생각일 것이다. 사랑해서 그랬어라는 변명에 휘둘리는 이들이 어리석다고 여겼을 나 때문에. 그들과 나는 다르다고 착각했을 나의 어리석음에. 고통에 공감하면서도 그들의 심리를 일평생 이해할 수 없다 여긴 오만에.
 
나는 내가 혐오한 민주의 오만이었고, 승하의 위선이었고, 남기의 변명이었다. 
 
그게 나를 아프게 했다. 자각해도 이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는 패악과 범죄를 정당화시키는 민주가 가여웠다. 자기합리화와 방어기재로 점칠된 승하의 위선적 다성이 따스했다. 폭력에 변명하는 남기를 미워할 수 없었다. 결국 나 또한 절망의 텍스트에 갇힌 한 명의 인간이었다. 사랑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5.

 
죄책감의 근간은 결국 절망의 텍스트에 있다. 사랑이란 숙명. 고통마저 아름답게 인식하는 인간의 그릇된 허상. 남기로 인해 촉발된 최후를 보고 나는 끊임없이 물었다. 가정폭력범과 같은 논리에 입각한 이 사람을 정녕 내가 사랑이란 말로 포장해도 괜찮은가. 이는 나아가 나의 취향에 대한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서문에 적었듯 나는 나를 괴롭게 만드는 것이 좋다. 선한 사람들이 외압에 의해 악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과 같은. 사랑하는 사람의 꿈 때문에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는 사람, 처음 만난 사람임에도 운명적인 인연에 의해 소중함을 느낄 때 즈음 그들을 갈라놓을 수밖에 없는 죽음. 여기까진 단순히 못난 취향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흔히 가난 포르노라고 하나. 구룡성채나 골방에서 썩어가는 청춘, 사각지대에 놓여 반짝이는 불법의 밤을 택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갈까. 남기와 같이 이용당하면서도 빌빌 기고 버둥대는 사람, 자신부터가 결핍이기에 마음을 이용해먹는 인간들. 이런 추함과 못남마저 나는 버릴 수가 없다. 물론 현실과 영화는 별개임을 냉정히 자각하고, 항시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을 얹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취향을 함부로 외부에 전시하려 하지도 않고, 당당하게 소비하는 편도 아니다.
 
 그렇지만 남기와 민주의 최후를 놓지 못하는 데에 이런 취향이 기여를 했다 생각하면 나는 다시금 물을 수밖에 없다. 나의 로망티시즘이 누군가에게 고통이 되지 않는지. 물론 이러한 사항을 세세히 검열하는 순간 예술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예술과 윤리가 별개의 영역인지에 대한 토론도 이러한 딜레마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기를 끝내 사랑하는 나의 잔인한 숙명이 과연 양지 바른 취향에서도 초래되었을 지. 이런 가정이 싹을 틔운 순간 아픔은 뿌리내린다. 어쩌면 나는 이게 민주가 그토록 잔인하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6.

불행하게도 이러한 변명에 나는 해답을 내릴 수가 없다. 책을 읽으면서 재미를 추구한 단순한 독자인 나도, 문장의 상징과 심미성을 따지며 문학성에 놀란 나도, 민주와 승하 남기라는 인물들의 캐릭터성에 흥분한 오타쿠인 나도, 하나의 강민주를 품고사는 여성인 나도, 그럼에도 내 문장들이 왜곡되거나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민주가 혐오하는 여성상인 나도. 전부 글을 읽는 나이니까. 
 
작가가 초입에 삶이란 절망의 텍스트임을 기고한 것도 이러한 의미가 아니었을까. 그녀는 고발로 우리를 징벌코자 한 것이 아니다. 인간이란 원래 그런 동물임을. 폭력 앞에서 평등하게 나약해지고 길들여지는 종족임을. 그렇기에 아름다울 수 있음을 은연중에 남긴 것이 아닐까. 
 
이런 해석을 남기면서도 나는 끊임없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페미니즘이란 존재가 그렇다. 타인을 검열하면서도 나 또한 그 자격이 있는지를 묻게 된다. 내가 혹시나 이 독서의 의의를 왜곡하는 것은 아닐지. 떠오르는 질문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서문에서 작가가 이 책이 성별이 아닌 모든 형상의 폭력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나의 지론이 지적하는 문제 중 하나를 가리지 않으리라 믿는다. 
 
실제 책에는 여성 폭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폭력의 현상들이 등장한다. 남성과 여성이 반전된 그루밍이라던지, 연예계에서 사람이 인격이 아닌 소문으로 소비되는 현상이라던지. 외에도 내가 발견하지 못 한 것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읽는 내 생각했다. 폭력은 겪은 만큼 보이는 것이라고. 잊고있던 노랑이의 외침처럼 뒤늦게 촉발되기도 하고, 어릴 때 겪은 상처에서 자연스레 읽어내기도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와 연령이 다른, 성별이 다른 사람들마다 주요하게 반응한 폭력의 형상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따라 이 책은 남성의 폭력성도, 여성의 폭력성도, 대중의 폭력성도, 개인의 폭력성도 전부 대응된다. 마치 삶에 자연스레 끼어있는 폭력의 본질처럼.

 
그럼에도 끝내 이 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일전의 문장들처럼 주인공 모두가 나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만일 내가 이 책을 읽고 분노하며 끝냈더라면, 내가 보고 있을 세상은 생각보다 아름다웠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폭력에 분노할 수 있는 자들은 오직 관찰자들 뿐이라고. 폭력의 경험자들은 불행하게도 온전한 분노만을 품고 살아가지 못한다고. 누군가는 그리움을, 어떤 이는 애정을, 누군가는 아픔을 평생 끌어안게 된다고. 우리가 살아가는 절망의 텍스트는 이런 문장의 연쇄임을 깨닫게 되었다.
 
책은 외친다. 금지된 것들을 인간은 항시 소망한다고. 그러한 추함을 가진 인간이야말로 결국 아름답다고. 폭력을 행사하는 민주 안에는 수많은 여자들의 비명이 묻은 계절이 들어있었다. 위선으로 점칠된 승하 안에는 아픔을 사랑으로 고통 또한 배려로 변환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닿을 수 없는 존재를 열망한 남기 안에는 분명한 사랑이 있었다. 이 미학이 추함을 아름다움으로 변환시켜주지는 못한다. 그들의 결핍은 분명 비틀리고, 고통스럽고, 악하다. 그러나 이 미학이 그릇된 것이 아님을 작가는 외친다. 정당화가 아닌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방향성으로. 
 
강압과 고압에 눈이 먼 인간 또한 사랑을 이해할 수 있음을, 위선으로 가득했던 이 또한 솔직해질 수 있음을, 그릇된 사랑은 사실 누구보다 진실한 사랑이 될 수 있었음을. 외줄의 절망이 희망으로 뒤바뀌는 것처럼 인간의 절망의 텍스트는 희망의 기고문임을. 간절하게 고발한다.
 
 

*

 
민주->승하
 

 
승하-> 민주
 

 
남기->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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