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from dead(still dead inside)

@joynjoyen

훌훌 털고 일어나요, 그 자식 강냉이를

b.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0.
나의 결핍을 안고서 그것을 너무 미워하지도, 너무 가여워하지도 않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작가의 말에 있는 이 한 문장을 풀어 쓴 게 이 책이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시대 혹은 비슷한 조건 또는 비슷한 성별을 가진 사람이라면 겪을 법한 미묘한 현실의 결핍들을 엮은 소설이라 그런지 가볍게 읽히고 무겁게 남았다.

1-1.
나는 그녀한테 자신의 미래를 투영했고, 그녀는 역으로 본인의 과거를 투영했다. 서로가 겪은 그리고 겪게 될 교집합을 인지하여 거리를 좁힌다. 동경, 동정, 동질감 등 공적인 관계 외의 감정들을 서로한테 비출 수 있던 이유도 상대를 완전한 타인이 아닌 자신의 일부처럼 인지하고 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2.
본 책은 쉬이 볼 수 있는 현실의 미묘한 어둠을 담고 있다. 분리감을 느낄 정도로 암울하진 않으나, 동시에 밝은 환상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현실을 여과 없이 나열하면서도 작가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희망으로 결말을 마무리 짓는다. 그것이 결별의 형태이든 재회의 형태이든. 이를 작가는 희미한 빛에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2-1.
개인이 아닌 사회 구조의 문제이다. 폭력은 맥락 안에서 존재하지, 개별적 개념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 맥락은 자신이 접한 가정과 매체라는 작은 사회부터 전반적인 인류사라는 사회 전체의 구조까지 아우른다.

2-2.
한 단어로 표현하기 어렵다. 다만 삶에 있어 매우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다. 직업 같은 현실적인 면부터, 정신적인 부분까지 많은 도움을 받았다. 작문 과정에서 고심하고 배움을 얻었기에, 결과물보다는 쓰기라는 행위 자체에서 애정을 갖게 된 것 같다.
토론과 사색 또한 이를 일부 충족 가능하다. 그러나 단발성을 갖는 말과 달리 글은 정련과 덧입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에 다르다고 생각한다. 희영 또한 본 과정을 거쳤기에 글에서 말로, 말에서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글은 성장을 효율적으로 가능케 하는 수단일 뿐이지, 결국 핵심은 끊임없이 생각을 퇴고해 보는 데에 있다고 본다.

3-1.
지수와 다희의 기대는 둘 다 서로를 응당 이해하리라는 착각에서 온 실망감이다. 퇴근길 내에 공유한 침묵이 이를 상징한다. 암묵적으로 퇴근을 함께하며 내밀한 부분을 공유하면서도 항상 대교를 건널 때면 둘은 말이 없어진다. 이는 한 관계에서도 이해의 시간과 차단의 시간이 공존함을 보여준다. 그 시간에서 각 인물은 더 다가오길 바라다가도, 한편으로는 묵언으로도 이해가 이루어진다고도 믿는다. 그러나 결국 침묵을 깨지 못하고, 고요 속에 돌아서는 인물을 통해 ‘말이 없어도 완전한 관계’는 불가능함을 제시한다.
한편으로는 재회의 장면에서 여전히 묻지 않는 것들이 남아있음에도 평화로운 둘을 제시한다. 즉 작가는 말의 힘을 강조하기보다는 관계는 원래 불완전한 것이며, 그렇기에 침묵 또한 이중성을 지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3-2.
다희의 불편을 덜어주려는 행위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지수의 불편감 해소에 가깝다. 관계에서는 항상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하다. 상대와의 거리감을 측정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을 무의식중 투영한다. 본인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거리감과 얼추 비슷하게 상대 또한 그러리라 짐작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수 또한 본능적으로 자신이 편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다희를 위한 배려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침묵이 좋을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은 항상 침묵보다는 말을 선호했기에 불편하더라도 전자를 택하는 것이 늘 옳다 생각했다. 그러나 상대는 침묵보다 내 말로 인해 초래되는 불편함이 더 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자신의 능력이 닿는 선 안에서는 타인한테 맞추어 두 요소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4-1.
두 감정이 완전히 분리되어 존재한다고 보진 않지만, 사랑 쪽에 해석의 무게감을 두고 싶다. 정녕 애정이 남아있지 않았다면 언니의 삶에 완전한 방관자로 남아 남았을 것이다. 사랑에도 충분히 증오, 하대, 핍박과 같은 감정들이 섞여 들어갈 수 있다.

4-2.
결핍의 시초는 자매의 아버지였겠지만, 결국 화살을 동생한테 돌렸다는 점에서 불화의 원인은 언니한테 있다고 믿는다. 특정한 사건보다는 언니 스스로가 결핍을 방치해두었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데도 이 관계가 더 간절한 쪽은 주인공이기에, 결국 언니의 요청에 맞춰야만 관계는 이어졌을 것이다.
자신의 세상에 타인을 완전히 끼워서 맞추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상대한테 맞추어서 나를 깎거나, 혹은 그 조각을 버리고 새로운 관계나 상대를 찾아서 사람은 삶을 기워가는 것이다.

5-1.
철이 드는 게 아니라 그 순간에 멎는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고통과 부담을 타인과 나눌 수 없다면 그것은 성숙함이 아닌 관계의 미숙함이다. 나는 아이다울 수 있는 시기에 아이다워야 어른다움 또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5-2.
영적인 부분으로 남는다는 믿음은 없으나 주인공의 오빠가 말한 문장에는 동의한다. 죽음 이후에도 사람은 기억부터 시작해 업적, 삶의 흔적, 관념적 대상 등 다양한 존재로 남을 수 있다.

6-1.
오랫동안 비슷한 생각을 품고 살았지만, 부정적으로 견지한다. 과한 독립심은 본인한테도 그리고 주변에 관계를 맺는 사람들한테도 벽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스스로한테 세운 벽은 결국 자신의 한계를 결정짓고, 타인 또한 벽에 가로막히면 더 다가갈 수 없기에 답답함이나 거부감 등을 느끼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어른이 되고 약함을 스스럼없이 보일 수 있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6-2.
양육 방식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식물이어도 어떤 풀은 하루에 한 번 물을 줘야 하고, 다른 화초는 1달에 한 번만 줘도 된다. 그러나 전례가 있는 식물과 달리 아이는 유일하고 예측 불허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역할을 맡는 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양육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훈육의 과정에서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의심과 수용은 필요한 태도인데 이 부재로 인해 이모의 훈육이 상처를 남겼다고 본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단단한 사람이 되려면 애정은 풍성히 주고, 책임은 뚜렷이 한 게 옳다고 본다. 독립심의 근간은 책임의 양과 비슷하게 나아간다고 생각한다.

7-1.
공부를 할 때 항상 현실적으로 불가한 목표를 잡고 임한다. 나는 10을 하겠다 마음먹으면 7만을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인 걸 알기에 15를 생각해서 10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불가능할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세뇌한다.

7-2.
이 글이 우리는 순수하게 기남의 입장에서 쓰인 걸 인지해야 한다. 가족에 있어 자식도 부모도 서로를 다 간파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가장 사적인 관계이기에 객관성을 잃는 게 가족이다. 기남의 입장에서는 단순 불편이었던 게 우경의 입장에서는 힘든 인고의 시간이었을지도 혹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이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경이 매몰찬 것은 사실이나 나는 시어머니를 대하는 태도, 마이클한테 남긴 말들 등을 짚어보면 우경이 오히려 신경 쓰였다. 부정의 감정이 드는 사람한테 과연 다정하다고 말할까? 관계를 완전히 차단하는 사람이 시어머니한테 매번 전화하고 감사를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우경이 가장 현실적으로 노력하는 사랑의 형태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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