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from dead(still dead inside)

@joynjoyen

훌훌 털고 일어나요, 그 자식 강냉이를

결핍을 너무 미워하지도, 가여워하지도 않는 것

1.
나의 결핍을 안고서 그것을 너무 미워하지도, 너무 가여워하지도 않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동아리 때문에 읽은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뒷 장에 적힌 문장이다. 딱히 새롭거나 위로를 받았다는 건 아니고, 그냥 하루하루 내가 살아왔던 걸음을 정리한 느낌이라 스며든 듯 싶다. 이것도 결국 공개용 글이라 완전히 솔직하게 적진 못하겠지만 나 또한 참 오랜 시간 결핍에서 허우적거린 사람이다. 어쩌면 지금도 그럴지도

그렇다고 내가 특별히 불행하거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반대로 내 아픔들이 유난이거나 배부른 소리로 치부될 일도 아니라고 본다. 아마 나는 스스로한테 동정을 먹이로 주고 싶지 않지만 때때로 억울함이 피어나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이정도면 꽤 곧게 잘 자라는 거 아닐까. 사람이 두렵지 않고, 사랑이 늘 궁금한 거 보면.
 
결핍의 주 재료는 결국 사랑과 사람같다. 이게 이루어지는 세상의 출발선은 가족이고 점차 사회로 확장되어갈 뿐이다. 그렇기에 결핍은 혼자만의 공간으로 남을 수 없다. 내 결핍이 다른 누군가가 이용해먹는 그늘막이 될 수도 있고, 때로 더 짙게 다른 사람의 결핍을 칠해버리는 흉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언제나 결핍은 무던히 대하는 게 좋은 것 같다. 미워하지도 말고 가여워하지도 않으면서. 현재 내가 배운 바에서의 최선은 이 결론이다. 잠정적 결론. 완결은 아니다. 결핍을 대하는 내 태도는 꽤나 여러 번 변화를 거쳤으니까. 오히려 바뀐다면 더 행복해질 방향이 남아있다는 거니까 좋은 뜻이겠지.
 
 
 
2.
고통과 아픔을 사랑하는 이유도 결국 승화의 일부일까? 완벽히 아름다운 이야기보단 질척거리고 쓰라린 인간들의 흔적이 좋다. 영화도 그렇고, 그림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최근 <소년 시절의 너>를 다시 보고 울었는데 반대로 그저 그런 듯 싶었다는 평을 들었다. 학문적이나 심미적인 부분만 생각했을 때 수작 반열은 아님에도 이 영화를 애닳도록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오늘 이 문장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이건 더 탐구가 필요한 걸로.
 
 
 
3.
사랑 영화를 이야기하니 또 이 주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사람은 두렵지 않으나 사랑은 무섭다. 경험해보지 않은 공포 뭐 그런 창대한 이야기는 아니고. 사랑이 얼마나 사람을 쉽게 휘두르는 지 알아서.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직감적으로 그리고 한 12%의 보잘 것 없는 경험으로 느꼈다. 이 감정에 참 취약하다는 걸.
 
이 글을 읽을 사람은 없겠지만... 보면 의외라 생각할지도? 알 사람은 알겠지만 연애에 딱히 시간과 돈을 열심히 투자하지 않는 성격이니까 난. 외로움에 무던한 편이기도 하고. 두근거리는 감정은 당연히 기분 좋지만 그 외에도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게 하는 건 세상에 가득해서. 그런데도 왜 사랑이 무섭냐 묻는다면 나를 잃어가는 기분이다. 내가 을이 된다거나 그런 일차원적인 문제가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 서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참 멍청해진다. 자제력을 잃기도 하고 평소에 하지 않을 말도 하고. 그러다가 이제 이불킥하는 거지 뭐. 
 
그래놓고 선은 엄청 긋는다. 단순 연인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친구든 가족이든. 마음이 너무 커지면 나를 잃고 타인을 먼저 생각한다. 그 사람이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혹시 더 연락하는 게 귀찮지 않을까? 불편하려나? 거절하는 거 자체를 힘들어하려나? 이런 쓸데없는 생각 때문에 항상 연락해도 몇 번 답장을 안 잇고 적당히 끊기게 놔둔다. 그리고 더 이야기하고 싶어도 그냥 읽고 넘긴다. 오죽하면 친구가 따봉임티 압수라 하겠냐고.
 
그니까 나를 잃는다는 건, 그냥 생각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사랑하면 욕심내는 것들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그냥 혼탁해진다 정신이. 이러면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게 쉽다지만 유감이다... 나는 일단 내가 흥미가 있어야 그 다음 단계인 사랑이든 뭐든 넘어갈 생각이 드는 걸. 
 
 
 
4.
갑자기 글 무게감이 훅 가벼워졌는데 그냥 요즘 사랑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이게 근데 연애 욕구보다는 나를 더 잘 이해해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사람을 볼 때 이 사람은 날 보는 데 도움이 되겠군 이런 도구적 사상을 갖고 있다는 건 아니고요... 그냥 무의식에 기저한 심리가 그게 아닐까 하는 고찰. 사랑할 때만 나오는 내 모습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만 보이고 싶은 모습들도 있으니까. 독립된 나에 대해서는 그래도 꽤 충분한 고찰을 거쳤고, 여전히 이해 중이지만 그래도 정립된 느낌인데 사랑은 참 모호하다. 아무래도 표본값이 없으니까 (ㅅㅂ). 뭐 웃자고 한 욕이였고요 어련히 때 되면 만나겠지 싶습니다. 이 꼴이라 누군가한테 다가갈 수 있을지 걱정은 되지만.
 
 
 
5.
다시 결핍으로 돌아가면, 나는 결핍에 이끌리는 게 맞는 것 같다. 내가 결핍이 있는지라 건강한 사람을 좋아하는 축이지만 선호와 본능이 늘 같은건 아니니까. 우울하거나 슬프거나 이런 면에 끌린다기 보다는 생각이 깊은 사람이 좋다. 친구로서도 애인으로서도. 그냥 더 다가가고 싶어진다. 근데 내가 봤을 때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생각이 단순하다 (...)
무지나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고찰과 집착의 문제랄까나. 어쨌든 근데 사람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난다고 아닌 얘들도 있지만 만난 인연들 중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보면 걱정이든 고민이든 사색이든 일단 뭘 많이한다. #정신병동집합소 걸어야겠네 ㅋ.ㅋ
 
 
 
6.
그러고보면 난 언제부터 결핍을 놓아줄 수 있었을까. 예전엔 참 많이도 미워했던 것 같다. 내가 예민한 사람인 걸 부정도 했고 미워도 했고 바꾸려고도 했고 참 아등바등 열심히 살았네 싶다. 이제는 관조의 단계까지는 이르렀다. 예민함을 써먹을 줄도 알고, 예민함을 무던함으로 치환하는 법도 배웠다. 여전히 배울 게 많지만 그래도 여기 오기까지 참 수고했다는 말을 갑자기 적고 싶어졌다 (복복복) 참 잘했어요 me. 상으로 네게 잠을 주마. 오늘 주절글은 여기서 끝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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